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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t there be a yard I
  Author : 황성혁     Date : 09-01-21 14:37     Hit : 16153    
   18칼럼94.pdf (766.3K), Down : 58, 2009-04-09 16:52:39
 
 
대한조선학회 제45권 제3호에 "Let There be a Shipyard I" 의 제목으로 실린 칼럼입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LET THERE BE A SHIPYARD I
                                      -거기 조선소가 있으라 하였다-

                                                                                                                          황    성    혁

“나는 평생 책을 한 시간 이상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인도 여행길에 선생님의 원고를 갖고 비행기에 올랐는데 단숨에 다 읽어 버렸어요. 대여섯 시간 걸렸을걸요. 그렇게 오래 책을 읽어 본 것은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삼십 대 중반의 출판사 사장은 내가 에딘버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운을 띄었다. 그때까지 계획된 일이 많아 연말까지는 인쇄에 들어 갈수 없다던 그의 말도 바뀌었다. 6월에 그리스에서 열리는 POSIDONIA선박 박람회 개막 전에 인쇄를 마치고, 내가 추천한대로 선박박람회에서 책의 판매를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몇 년 전까지 미국의 저명한 석유회사의 유조선에 승선 근무를 했으나 해고되었다고 했다. 그 뒤 SEAMANSHIP INTERNATIONAL 이라는 출판사를 열어 선박해운관계 기술서적을 출판하기 시작했는데 제법 성공을 거두었고, 그 성공의 여세를 몰아 최근에 270년 된 WITHERBY 출판사를 인수했다고 했다.

그는 자랑할 것이 많았다. 자그마한 창고에 책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것 저것 인쇄가 끝난 책들을 뽑으며 자랑을 했다. 모두 기술 서적이나 교재들이었다. 비교적 깔끔하게 만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LNG 운반선의 유지와 운항의 기술에 관한 책을 시리즈로 내어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도 하였다. 사무실에서 그는 내 책에 대한 준비사항을 보여 주었다. 보여주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었다. 책의 3부 중 1부는 이미 안이 만들어져 있어서 바로 인쇄에 들어 가도 좋은 상태였다. 내가 보낸 원고 그대로였으나 여기저기 삽화를 넣어 놓았었다.

“우리 직원들의 중지를 모아서 만든 겁니다”하며 그는 표지를 꺼내 놓았다. “KOREA SHIPYARD NEGOTIATIONS - THEIR DEALINGS WITH THE MAJOR SHIPPING NATIONS” 라는 제목이 푸른색 바탕에 새빨간 색으로 걸려 있었고, 원색의 태극기가 표지 한가운데서 펄럭이고 있었고, 도크에 점잖게 앉은 붉은색 초대형 유조선 한 척이 표지의 아래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시뻘건 색으로 도배를 해 놓았다. 전혀 내 생각과 다른 아이디어였으나 그 젊은 사장의 열의를 꺾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아 WONDERFUL 만 반복했다. 그런데 슬그머니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의 초상화를 꺼내 놓는 것이었다. 정경화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그녀의 멋진 사진이 있었는데 허가 없이 사용하기가 어려워서 스케치를 한 것이라고 했다. 책에 나의 스코트랜드 연수시절 SCOTISH MUSIC FESTIVAL 에 갔던 이야기가 있었다. 거기 정경화씨가 바이올린 협주를 감상했었는데 그 이야기가 재미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에 삽화로 넣겠다며 스케치를 했고 원본은 내게 준다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도 책에는 군데군데 삽화가 들어 있었다. 전부 스케치들이었다. 현대중공업 근처의 지도, 여러 개의 초대형 유조선 그림, 또 여러 개의 엘리베이터 그림이 있었다. 처음 외국 나가서 엘리베이터 속에서 겪은 어이없는 실수 이야기가 아주 웃겼다는 것이었다. 유치하고 책의 내용과 맞지 않는 것들이었지만 나는 그저 WONDERFUL을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다.

그와 그의 약혼자와 함께 점심을 했다. 둘 다 이혼을 한 경력이 있고 딸린 아이들이 있어 함께 살며 에딘버러의 상류사회 학교에 보내고 있다고 했다. 가는 길에 할인점 “TESCO”를 지났는데, 그는“몇 년 안으로 우리 출판사 창고를 저 TESCO 매장만큼 키울 거예요” 라고 장담했다. 나는 그가 그렇게 할 능력이 있어 보인다고 맞장구를 쳤다.

십여년전 출판된 “넘지 못할 벽은 없다”의 영역을 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온 지도 몇 년이 지났다. 갑자기 번역을 해 보겠다는 사람들이 나서 작년 한해 그 번역에 빠져 지냈다. 영문판의 준비는 피를 말리는 작업이었다. 영문학 교수가 번역한 뒤 한줄 한줄 다시 읽는 작업을 거쳤고, 영국 출판사로 보내기 전 끙끙거리며 혼자 다시 읽었다. 그런 뒤 JONATHAN PENFOLD 라는 영국 작가가 정말 읽을 수 있는 영어로 만들어 주어 마음 놓고 출판사로 보낼 수 있었다. 고비도 많았지만 내 영국친구들과 한국 친구들이 용기를 북돋아 주어 결국 에딘버러까지 가게 된 것이었다.

에딘버러를 떠나며 나는 출판사의 성장과 발전에 경이를 표하고, 끊임없는 성장에 대해 기원을 했지만, 책의 모양이나 이름 등에 관해서는 말을 아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주말을 런던에서 머물 것이며, 그들도 존경하고 있는 JAMES FREELAND, ADAM CORBETT, IAN MIDDLETON, JONATHAN PENFOLD, CH PARK 등과 책의 이름 등에 관해 이야기를 할 것임과, 어떤 것이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바로 알려주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JAMES FREELAND 는 나와 30년 지기다. 영문판 출판을 생각하면서부터 그와 의논 했다. 그는 3 페이지나 되는 책의 서문을 써 주었다. 해운, 법조, 금융에 광범위하게 연결된 그의 가문소개, 그와 나와의 우정, 한국조선공업의 시작과 성장 등을 그의 진솔한 안목으로 적어주었다. 세계최대의 조선해운 주간지 TRADEWINDS 의 ADAM CORBETT 는 지난 1년간 집중적으로 내 책의 출판에 대해 신문에 소개를 해 주었다. IAN MIDDLETON 은 세계최대의 해운조선월간지인 SEA TRADE 에서 근래에 은퇴한 업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인사로 이번 출판사도 그의 소개로 결정되었다. JONATHAN PENFOLD 는 내 가까운 친구인 BELGIUM 의 TRANSPETROL 해운회사 회장인 HARRY RUTTEN 의 사위인데, 영국 출신 문필가로 잡지를 편집하며 영어로 기사를 쓰고 있었다. 박중흠 은 책의 진행을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갖고 돌 봐 주었다. 다행히 나의 출장계획과 그의 런던을 지나는 일정이 맞아 토요일 반나절을 같이 지내게 되었다.

금요일 에딘버러를 떠나 런던으로 오면서 생각이 많았다. 그 원시적인 뻐얼건 표지와 기술안내서 같은 책 이름과 정말 유치한 삽화들이 가슴을 눌렀다. 사장은 그것을 굉장한 열성을 다해 만들었는데 한마디로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제일 중요한 것은 책의 이름을 무엇으로 하느냐는 것 이었다. 토요일 오후 ALAN MARSH, JAMES FREELAND, 박중흠과 골프를 했다. 거기의 주제도 책 이름이었다. 박중흠은 심지어 골프 공 한 박스를 상품으로 내 놓았다. 여러 이름이 거론되었다.
- 수평선에 뜬 희망
- 수평선에 뜬 태양
- 거기 도달하기 위해 미쳐라
- 대양으로 나서자
- 그대의 찬손
등이 나왔으나 상을 받을 만한 것은 없었다. 박중흠 은 골프 뒤 바로 떠나고 혼자 이것저것 고민을 하며 주말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월요일 IAN MIDDLETON 과 저녁을 같이하며 저녁 내내 의논을 했으나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았다. 출판사가 정했던 이름, 지난 주말 거론됐던 이름 모두 적합 치 않다는 것, 아주 좋은 이름이 있을 것 같은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 좀더 생각해 보자는 것만 합의했다.

다음날은 귀국하는 날이었다. LONDON CITY 에 있는 TREVOR FAIRHURST 사무실에서 JAMES FREELAND, ADAM CORBETT 와 함께 만났다. 그 동안 수집했던 자료들을 책상 위에 펴 놓고 의논했다. 출판사의 원색 찬란한 표지, 출판사 사장이 차선으로 제안한 “KEEL LAID”, 주말에 쏟아져 나온 이름들, 출판사의 삽화가 들어있는 출판(안)도 꺼내 놓았다. 전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더욱이 유치한 삽화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CITY 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의 하나인 “GEORGE & VULTURE INN”으로 갔다. TREVOR 의 사무실에서 한 블록쯤 떨어진 전통적인 영국식 음식점이었다. 좁아터진 공간에 의자들을 다닥다닥 붙여놓아 옆 사람의 팔꿈치가 와 닿곤 했다. 우리자리는 한구석으로 특별 예약되어 있었지만 식당 안이 하도 시끄러워 옆에 앉은 JAMES 와도 고함을 질러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것도 런던의 전통이었다. 우리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내 책에 실린 옛날 모험담들, JAMES 와 TREVOR 와 내가 옛날 선박 계약하던 이야기들을 떠들어 대었다. 점심이 끝날 때쯤이었다. 끊임없이 책의 출판(안)을 들썩이던 JAMES 가 골돌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을 저어 우리를 조용하게 했다.

“가만있자, 가만있자, 여기 완벽한 이름이 있었잖아.” 그는 책 원고의 첫 페이지의 첫 줄을 가리켰다.
“여길 봐, ‘LET THERE BE A SHIPYARD’(거기에 조선소가 있으라 하였다)가 있잖아. 이거야 이거라고.” 완벽한 이름이었다. 모두 말을 잃었다. 우리가 찾고 있던 이름은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처음 책을 시작 할 때 인용한 성경의 첫 구절이었다. 더 다른 이름은 없다는 결론이 났고 그것을 바로 출판사에 알렸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