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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를 만드는 과학자들
  Author : 황성혁     Date : 08-05-16 14:09     Hit : 15374    
 
 
대한조선학회 제45권 제1호에 "미래를 만드는 과학자들" 의 제목으로 실린 칼럼입니다. 
 
 
                                                           미래를 만드는 과학자들

 
책 한 권을 받았다. “미래를 만드는 한국의 과학자들”이라는 제목이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열네분의 우리 과학자들의 연구의 결실을 엮어 놓은 책이었다. 조선을 전공한 내게는 생소한, 약간 형이상학적인 주제들이었다. 생명공학, 천문우주학, 신소재, 환경공학에 대한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확대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분야에 대한 연구결과 들이었다. 그래도 그 책은 흥미진진했다. 그 특수한 분야들이 이해하기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으나, 성공으로 접근해가는 과학자 개개인들의 집념과 열정이 읽는 재미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자랑스런 열네 사람의 과학자들 중 나의 피부에 와 닿는 논문을 실린 교수가 딱 한 사람 있었다. 신종계 교수였다. 그의 “디지털조선소를 향한 출항”이 거기 소개 되고 있었다.

나는 신교수의 학문적 성공담을 들어왔었다. 그리고 그의 넓은 인간적인 친화력과 조선산업계와의 격의없는 협조를 눈 여겨 보아왔었다. 더욱이 그가 집념을 가지고 추구하던 과제가 “지능형 선박곡면가공기술” 이어서 그의 성취와 그 성취과정은 내게도 경이로운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1972년 3월 나는 스코틀랜드의 SCOTLITHGOW 조선소에 연수를 갔었다. 조선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세계 최대 최신의 조선소를 짓는다는 꿈을 가슴 가득이 담고, 삼십 명 남짓한 한국조선의 선구자들과 함께 당시 조선기술의 선진국이었던 영국으로 떠났던 것이다. 내가 맡은 분야는 대조립이었다. 대조립 공정은 주로 선박의 앞쪽과 뒤쪽의 곡면으로 이루어진 부분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평면인 선박의 가운데 부분과 달라서 모든 철판을 삼차원의 곡면으로 꾸부려야 했었다. 그것은 프레스나 기계로 가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수 작업으로 이루어 지는 공정이어서 상당한 호기심과 꼭 배워 와야겠다는 열의를 가지고 연수를 떠났었다. 모든 연수생들은 훈련이 끝나면 일일 보고서를 썼었다. 그날 배운 것, 본 것, 들은 것을 정성을 다해 쓰고, 상세하게 그림까지 곁들여서 조선소로 보냈었다. 막 땅 고르기를 시작하던 조선소에서는 우리들의 보고서는 모든 작업의 시작이었다. 그 중에서도 나의 보고서가 비교적 양이 많고 그림도 많은 편이었다. 내가 따라다니던 조선의 곡면 가공담당자는 조수 몇 명을 데리고 곡면을 만들고 있었다. 몇 센티나 되는 두꺼운 철판을 꾸부리는데 그는 마치 요술사 같은 묘기를 보이고 있었다. 우선 그는 철판 위에 백묵으로 철판 길이만큼 선을 그었다. 그리고 조수에게 아세틸렌 불꽃으로 그 선을 따라 철판을 발갛게 가열하도록 했다. 그리고 다른 조수는 그의 지시에 따라 물을 끼얹고 있었다. 놀랍게도 철판이 꾸부러지고 있었다. 거의 정확하게 그가 의도하던 곡면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물었다. 그 백묵의 선의 간격은 얼마나 되느냐, 선의 길이는 얼마로 하는 것이 좋으냐, 그 부분은 얼마나 오래 가열해야 되느냐, 온도는 어느 정도로 잡아야 되느냐, 물은 어느 시점에 어느 정도로 뿌려야 되느냐. 그리고 철판의 두께는 선의 간격이나 불길의 크기나 가열온도나 물 뿌리는 시간과 양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 그는 아무 대답도 주지 않았다. 아니 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단지 그의 오른쪽 둘째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를 찌를 뿐이었다. 다 머리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오랜 경험에 의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을 뿐이고 가르치거나 적어 낼 수 가 없다는 것이었다. 절망적이었다. 그의 하는 짓을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스케치하고, 가열된 철판의 색갈을 기록하고, 모든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기록하고, 작업자의 움직임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보고서를 열심히 조선소로 보냈었다. 그 모든 기록들이 한동안 조선소에서 유용하게 활용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을 신종계교수가 디지털화 했다는 것이다. 그 머릿속에 들어있는 흔들리는 기억을, 술 몇잔 마신 다음날이면 더 많이 흔들릴 수 있는, 그 청기와 장수의 머릿속에서 믿을 수 없이 오락가락하는 아집을, 조금만 삐끗해도 엄청난 추가작업을 해야 하는 그 공정을 딱 소리 나게 보편화 시킨 것이다. 아직도 완성을 향한 단계에 있고 세계적 특허를 얻는 단계에 있다고 하나 그것은 이미 꿈을 벗어난 현실적 성취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형이상학보다 더 철학적이라 느끼게 되었다. 몇십 년 동안 현장에서 익힌 그 반장의 머리에 들어있는 비정형의 사고를 철판 위에다 형상화 시켜내는 작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조선산업 전체를 디지털화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세계조선기술의 새 장을 열겠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그 규모에 있어서나 기술의 수준에 있어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제일이며, 세계 조선, 해운산업을 이끄는 지도적인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것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개발되고 발전하는 세계적 기술에 대한 적응, 그것을 뛰어 넘은 새로운 자체 기술의 개발, 세계 시장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친화력과 지도력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삼십 년 남짓한 세월에 이루어 낸, 조선관련자들이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성취한 눈부신 성과라 할 수 있다. 세계의 선주들은 그들의 선대교체나 선대확장을 계획할 때 한국조선업계의 기술개발사항, 가격, 납기들을 먼저 확인한다. 한국에서 지을 수 있을 때는 당연히 한국에서 짓는다. 납기와 가격이 그들의 사업계획과 맞지 않을 때 차선으로 다른 나라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상당 기간 계속되어 온 세계 해운 업계의 전통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조선학계와 학회의 현황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도의 산업수준이라면 한국의 학계나 학회는 전 세계를 이끌어야 하고, 전 세계의 석학들이 한국에 와서 배워가야 하고, 한국의 석학들이 높은 강의료를 받고 외국에 나가 가르쳐야 한다. 조선산업에 기대어 기생할 것이 아니라 산업에 걸 맞는 위상을 스스로 갖추고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학계와 학회가 업계의 수준으로 부터 너무 뒤떨어져 있고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뒤떨어 지리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국제적 학술회의를 이끌거나 업계의 고충을 해결해 준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한다. 반대로 그들만의 좁은 울타리 안에서 편짜기와 나눠먹기로 세월을 보내며 오히려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언젠가 논문평가위원회에 평가위원으로 초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 여러 논문들의 내용을 읽고 그 중 그 지역사회나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가려내어 상을 주자는 모임이었다. 상당히 건설적이고 읽어 볼만한 내용들이 있었다. 좋은 논문을 읽었고 그런 분이 수상하는데 나도 한몫 할 수 있겠다는 자부심 마저 가졌었다. 그러나 논의는 전혀 상식 밖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창의적인 발상과 진지한 논술이 깃들인 논문들은 다 제쳐 놓고, 논의는 “우리나라 전통한선 구조를 이용한 요트설계”라는 요지의 논문에 집중되고 있었다. 나는 조선학 박사도 아니고 조선학을 가르치기 위해 깊이 연구한 교수도 아니지만, 전통한선과 요트가 비교될 수 없는 판이한 구조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상식 정도는 가진 사람으로 자부하고 있었다. 완전히 비합리적인 주제였고, 비논리적인 논술이었다. 나는 반복해서 그 비 합리성과 비 논리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참가하고 있던 몇몇 교수는 엉뚱하게도 “그 교수는 능력이 있습니다.” “공로가 있습니다.” 라고 반박하는 것이었다. 논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 교수의 능력과 공로를 내 새우는 것이었다. 아예 “모르면 가만 있으라”며 내 말문을 막는 것이었다. 나는 결국 “이 논의는 모두 잘못되었다” 라고 선언하였다. 그러자 바른 대답이 나왔다. “금년의 이 상은 그 교수가 탈 차례입니다.” 처음부터 정해진 나눠 먹기였던 것이다. 내가 그런 특수한 경우에 참여를 한 것이 불운이었는지 모른다. 다른 일반적인 경우에는 합리적인 결론이 나왔으리라 기대 하면서도, 특수한 경우이지만 그런 결론을 내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학계가 세계의 높은 경쟁의 장벽을 뚫고 도약하고 있는 업계의 수준을 따라가기는 어렵겠다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 일이다. 한 대학교수가 심사위원장이 되어 자랑스런 조선업계의 동문들을 선정 시상한 일이 있었다. 한국조선공업도 어려웠던 초창기를 지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이제 세계 제일의 위치에 서는 동안 조선공업에 기여한 많은 훌륭한 선후배를 열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수상자 선정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의 입맛은 씁쓸할 수 밖에 없었다. 수상자 전원이 그 위원장의 동기생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상한 분들도 훌륭한 업적을 쌓은 분들이었다. 그러나 좀더 업계를 망라해서 원숙하고 대범한 선택을 했더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은 남게 되었다. 동기들 만의 옹졸한 파티가 아니라 전 업계와 학계가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그래서 조선산업의 위상에 맞는 흥겨운 잔치가 될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아주 요즈음의 일이다. 대한조선학회는 세계학회 사상 유례가 없는 개혁을 이루어 내었다. 65세 이상의 회원은 평의원 후보로부터 제외한다는 것이었다. 당혹스럽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 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것뿐일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평의원은 전체 회원들이 뽑는 것이고 나이에 상관없이 회원들이 뽑아주지 않으면 언제라도 탈락하게 되는 것이다. 학회에서 목청 큰 사람이 선동할 일은 결코 아니었다. 더욱이 능력과 경륜이 부족한 학회가 가능한 한 많은 지혜와 충고를 받아들여야 할 시점에서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또 한번 65세라는 나이를 가지고 칼로 베듯 편가르기를 한 것이다. 듣기 싫은 소리, 자리를 같이 하기 싫은 사람들을 갈라 놓고 그래서 주변에 겹겹이 담을 쌓는 이 분들이 언제쯤이면 마음을 열고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받아들여서 스스로의 위상을 키우고 산업계에 영양가 있는 바람을 끌어 들일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종계 교수뿐이겠는가. 우리의 젊은 과학자들의 새로운 세상에 접근하고저 하는 그 끈질긴 노력과 격의 없는 인간적 포용을 보며 우리는 희망을 갖는다. 나눠먹고 편가르는 것은 실력이 없거나 자신이 없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트인 마음의 젊은 과학자들이 많이 나와서 아래 위를, 전후 좌우를 편안하게 아울러 업계와 한 덩어리가 되기를, 그래서 이 두껍고 어두운 껍데기를 깨고 학계와 학회를 밝고 할일 많은 넓은 세상으로 이끌고 나와주기를 빈다.

65세의 나이를 넘긴 나의 진실한 목소리가 정성스럽게 경청되기를 바란다. 또 하나의 다른 편의 목소리로 타기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