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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박영업과 사회환경
  Author : 황성혁     Date : 08-05-15 08:47     Hit : 15744    
 
 
지난 4월10일 인하대학에서 “조선영업” 에 대한 특강을 하였습니다. 영업환경에 관한 시리즈로 계획을 하였는데, 기업과 영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그 요약을 첨부 합니다. 잡다하고 두서가 없는 듯하나 차츰 다듬어서 하나의 줄거리를 만들어 나갈까 합니다.

 
                                                   선박영업과 사회환경

 
사랑하는 조선공학과 후배 여러분,

저는 바닷가에서 성장했고, 바다는 내 몸과 마음의 전부였으며, 바다의 주인공인 배는 제 생활의 주인이었습니다. 대학에서는 물론 조선공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제가 65년에 대학을 졸업했을 때, 우리나라의 조선공업은 아주 원시적인 단계에 있었습니다. 지금 부산에 있는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한국조선공사가 가장 큰 조선소였고 그 외에는 작은 낙후된 조선소가 몇 개 문을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조선소라기 보다 허드레 철공소 같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인천에 있는 대우중공업의 전신인 한국기계에 입사하였습니다. 종합기계공장으로서 그나마 선박용 엔진을 열심히 만들고 있었습니다. 물론 어선용 소형 엔진이었습니다.

71년말 현대건설이 본격적인 조선소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참여하였습니다. 저의 꿈은 기본설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배에 첫번째 숨을 불어 넣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72년 초 영국에서 현장실습을 마치고 나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차츰 선박영업 쪽으로 제 생애의 방향이 잡혀지고 있었습니다. 선박을 설계하는 것, 제작하는 것, 건조하는 것, 시운전 하는 것,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지만, 선박영업은 시작과 마지막을 맡은 부분입니다. 선주와 선박건조계약을 맺어서 모든 작업이 시작되도록 하고, 배가 완성되었을 때 그 배를 선주에게 인도하는 것, 그것이 선박 영업이 맡은 일입니다. 어떤 공정보다도 중요하고 긴급을 요하는 분야이면서도 경험이 부족한 부분이었습니다.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배를 알아야 하고, 고객들과의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그들과의 대화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하고 그들과의 사이에 놓인 관습과 전통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런데 장벽은 바깥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깥에서의 장벽을 넘었는가 하면 우리 사회의 더 높은 장벽이 우리를 막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세계에서 사업을 해 왔고 많은 성공을 이루어 왔다는 것은 그 안팎의 장벽들을 뛰어넘은 역사의 기록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후배들 앞에서 그 영업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선후배들이 선박영업에 관한 제 생각을 정리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습니다. 김상현 교수가 여러분들에게 강의를 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을 때 이 강의를 그에 대한 시작으로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난 시절 겪었던 아주 어려웠던 경험 중 하나를 여러분들께 우선 읽어보라고 드렸습니다. 제가 10 여년전 출판한 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 책은 또 곧 영국에서 영문판으로 출판될 예정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기업을 하는 것이나 영업을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 지느냐, 또 이 사회의 오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를 말씀 드리는 데에 가장 적합한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현대중공업이 놀웨이와 영국의 합작회사와, 그때까지 세계에서 지은 적이 없는 최대의 자동차 트레일러 운반선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선주는 준비단계에서부터 현대의 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기술적인 준비를 하고 선주가 배를 짓고 난 뒤의 운영계획을 세우는데도 현대가 기술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을 때 선주는 국제 입찰을 시작했습니다. 전세계의 조선소들이 참여 하였습니다. 당연히 현대가 계약을 따는데 편안한 입장에 있었지요. 입찰은 끝났고, 현대가 최저 입찰자가 되었고, 선주는 현대와 계약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습니다. 대우가 끼어들었던 것입니다. 부르는 대로 값을 내리겠으니 자기들도 참여할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조선공업의 동업자로서 우리는 대우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 시작한 조선소로서는 그런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고, 참여할 수 만 있다면 참여한다는 그 자체가 그들의 명성을 얻는데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정부는 한국기업끼리 해외에서 과당경쟁을 해서 국익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기업끼리 서로 피터지는 경쟁을 벌여 손해보는 장사를 하는 경우가 수없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프로젝트는 초기부터 현대가 관련부처에 보고를 했고 당국은 현대에게만 참여승인을 했었습니다. 더욱이 입찰이 끝나고 나서 최저입찰자가 밝혀진 뒤의 참여는 실무적으로나 예의상으로나 용납되지 않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대우의 적극적인 공세는 선주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들 경영진 사이에서 “값을 깎겠다는데 왜 참여시키지 않느냐” “그들에게 프로젝트를 주지 않더라도, 참여만 시켜서 현대의 가격을 깎는데 대우를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 는 의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게 “대우가 20% 까지도 값을 깎겠다고 하니 5%만 깎아라. 그러면 두말없이 내일 현대와 계약하겠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현대는 완강했습니다. “우리는 국내 법규에 맞춰 입찰했고, 대우의 행위는 한국 국내법에 저촉되며 정부의 수출허가를 결코 받을 수 없다. 입찰은 이미 끝났고 다시 협상을 벌이겠다는 선주의 행위는 국제 관례에도 어긋나는 짓이다. 우리는 한 푼도 깎을 수 없다” 하고 버텼습니다. 결국 현대의 입장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선주도 대우의 참여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오슬로에 있는 놀웨이 주재 한국대사가 대우의 입장을 옹호하고 나선 것입니다. 다 끝난 입찰을 두고 “두 회사가 참여하면 한국으로 낙찰될 기회가 더 많다.” 현대의 자체 개발기술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대우는 독일의 기술을 도입하고 있느니 선주에게 더 신빙성을 줄 수 있다.” 라며 그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선주에게는 “대우에 발주하면 대한민국 전권대사인 내가 책임지고 한국의 수출허가를 받아주겠다”는 공식 서한을 발급한 것입니다. 대사가 엉뚱하게 버티고 있는 동안, 현대의 수중으로 들어왔던 프로젝트가 허공에 떴고 두 달 동안 꼼짝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남의 말을 전혀 들을려고 하지 않아서 단순한 논리도 설명 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 해외공관장 회의가 있어서 그 대사도 귀국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대사를 설득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삼고 만나 뵈었지요. 한때 군사령관을 지냈고 반대파의 총부리 앞에서 의연히 군의 숙정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대사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끝없이 그의 자랑만 하고 자기의 주장만 되풀이했습니다. 서로 대립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혼자 떠들다가 지루해 지면 “자 이 대한민국 전권대사가 그대들에게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묻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사의 행동은 잘못되었고, 한국의 국내법에도 어긋나며, 국익에도 큰 손해를 입히는 행위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대화가 반복되자 성질이 급한 그는 우리에게는 정말 해서는 안될 말을, 그로서는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말을 내 뱉았습니다. “뭐야, 대한민국의 전권대사에게 하찮은 장사치들이 말이야”. 그 말 한마디로 모든 논쟁은 끝났습니다. 그 말 한마디의 실수 때문에 그는 그의 주장을 꺾지 않을 수 없었고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하찮은 장사치”로 자리 잡고 있었던 우리는 “결코 하찮은 장사치”로 멸시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나라 총생산의 13%를 담당하고 있었고 가난한 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밤을 낮으로 뛰는 긍지에 찬 기업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기업가나 국제적 사업가들이 하찮은 장사치로 폄하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부를 만들어 내거나 그것을 거래하는 사람들에 대해 정치하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의도적으로 그런 표현을 쓰고 있었습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사농공상 (士農工商)”의 전통 때문인지 모릅니다. 선비가 정치를 하던 시절 생산을 하는 사람과 교역을 하던 사람을 하대하던 전통 때문입니다. 그들은 온갖 부정과 타락한 수법으로 수탈을 하면서도, 수탈의 대상인 생산과 교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더러운 사람으로, 수탈하는 그들은 깨끗한 사람으로 강변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일반 대중까지도 재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돈 번 사람들, 그들보다 돈 많은 사람들을 부패한 사람들로 폄하해 놓고 모든 논쟁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를 세운 사람들은 그들입니다. 생산하고 그 생산한 물건을 외국에 판 사람들입니다. 외국과 품질경쟁을 해서 이기고 그 좋은 품질을 외국 고객들에게 확인시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의 국부를 일으켜 세우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 사람들입니다. 일년의 반을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세계 방방곡곡으로 다니며, 한국을 미개한 나라로 가난과 질병이 만연한 나라로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국산품을 팔아낸 사람들입니다.

그다지 오래 되지 않은 시절이야기 입니다. 포항제철의 회장이 산업자원부장관으로 부임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경영인이었습니다. 그는 국제적인 감각과 실제 경영에서 얻은 지식을 활용해서 국가기관의 업무를 개선시킬 높은 포부를 가지고 부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6개월도 견디지 못했습니다. 권위주의에 휩싸인 관료들 사이에서 아무 일도 계획하지 못하고 아무 일도 올바로 집행하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공무원들이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따라서 전혀 대화의 통로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반면 정부에 몸담고 있던 관료들은 그들이 기관을 떠나자마자 기업에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능력도 뛰어난 것이 없고 그 기업에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기업의 예산만 축내면서 반드시 윗자리에 앉아서 기업의 종사원들을 부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번도 자기 손을 더럽혀 가며 돈을 벌어보지 못했고, 생산에 종사해보지 않은 종교인들과 소위 행동파 학자들은 기업인을 성토 할 때마다 가장 앞자리에 앉습니다. 이것이 우리사회를 개발하고 발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혁파해야 할 과제입니다. 어느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은 우리 역사상 첫 번째 노동쟁의가 발생한 조선소에 달려 왔었습니다. 그 살벌한 현장에서 그는 거리낌없이 말했습니다. “이 회사 회장 주식을 뺏어서 노동자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어느 세상에 그런 사람에게 그런 권한이 주어 집니까. 그러나 그는 나중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제 총선거가 끝났습니다. 정치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는 우리 모두를 딜레마에 빠뜨렸습니다. 어려운 선택이 강요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비교적 이명박 대통령을 잘 아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는 기업을 하며 여러 가지 의혹과 연결이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아는 그분은 재주가 넘쳐 나지만, 모두를 아우르는 덕망은 그의 재주만큼 충분하다고 생각치 않았습니다. 그는 결코 최선의 선택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맞선 정치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너무 부실하고, 무능하고 무식했으므로 차선으로 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거전 그가 속한 당 안팎으로부터 집중된 그에 대한 인간적인 폄하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그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또한 당선한 뒤 끝없이 이어지는 그에 대한 불공평한 평가가 어디서 오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대통령이 기업가 출신으로서 낙인을 받은 그 원죄에 대한 “사농공상” 식 집중공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제를 살리고 사회 시스템의의 개혁을 이루기 위해 선택을 하였으면 어느 정도의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덕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 그 부족한 부분은 국민들이 메꾸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 앞에서 느닷없이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여러분이 학업을 끝내고 사회로 나갔을 때 부딪히게 될 여러 가지의 현실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해 말씀 드리고 싶어서 입니다. 사회로 나서면 여러분들 중 많은 사람들이 생산과 교역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고 그것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해야 합니다. 세계시장에 나서면 첫째 외국인을 이해해야 하고 그들이 우리를 이해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쉬운 일입니다. 우리가 합리적이기만 하면 외국인은 우리를 받아 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산업은 그야말로 어지럽도록 빠르게 발전해 왔습니다. 우리의 해외 영업팀들은 기업의 수준을 외국인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눈높이는 이 국제산업이 갖는 눈높이를 따라 갈 수 없었습니다. 회사의 내부 결재를 마친 뒤 체결한 계약에 대해, 시장이 조금만 좋아지면 결재한 바로 그분이 그의 서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가격을 올리라고 지시 합니다. 다 합의를 이루고 계약을 하기로 예정된 하루 전날 조금 더 주겠다는 거래처가 있으면 본사는 “Just be disappeared”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그리고 회사바깥 쪽,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 백성을 먹여 살리는 산업의 역군들을 “하잘것없는 장사치”로 폄하합니다. 산업이나 삶의 수준은 선진국을 따라가고 있는데 의식수준은 아직도 일제강점기나 심지어는 그 이전의 조선조의 수준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수 백년동안에 이루어 놓은 산업혁명을 우리는 단지 20년 혹은 30년 동안에 이루어 내었으니 눈에 보이는 것과 마음에 느끼는 것 사이에 괴리가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약점이며 동시에 우리의 힘입니다. 기적을 이루어 내었는가 하면 그것을 제때에 소화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모순을 지니고 있는 사회로 여러분은 나가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의 가장 가까운 심복인 중앙 정보부장에게 시해 되었을 때 나는 런던 지점장이었습니다. 가는 곳 마다 그 상황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유교사상이 가장 잘 보존 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 날 수 있느냐”는 것이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핑계 같은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백년 걸려 이루어야 할 산업혁명이 한국에서는 단지 15년 내지 20년 사이에 일어났다. 피부에 와 닿는 문명의 발달과 머릿속에 남아 있는 전통적 문화와 충돌이 불가피 했던 것이다.” 결국 그 사건은 군사개발 독재를 끝내고 정상적인 경제 개발의 시대로 넘어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기록될 우리 민족의 저력이며 약점이 될 실례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조선공업의 현재와 앞날을 살펴 보겠습니다. 보통 조선의 시황을 이야기 할 때 6-6 혹은 4-7이라고들 부르고 있습니다. 6개월쯤 반짝하는 동안 일거리를 챙겨 놓고 6년동안의 궂은 날을 대비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의 경기 cycle은 그 오르내림이 격렬해서 좋은 날과 궂은 날이 너무 뚜렷이 비교됩니다. 좋은 날은 짧고 궂은 날은 오래 계속됩니다. 그래서 뒷심 있는 조선소가 언제나 이기기 마련입니다. 요즈음은 조선공업이 생긴 이래 최대의 호황입니다. 벌써 5년째 초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주로 중국 경제의 팽창이 그 배경입니다. 중국은 철강 산업을 급속히 확장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로부터 철광석과 석탄을 실어 날라야 합니다. 배가 필요하게 되지요. 더구나 계획에 없던, 갑자기 획득한 원자재를 실어 나를 배를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입니다. 그럴 때 배의 용선료는 부르는 것이 값입니다. 모든 종류의 천연 자원과 에너지는 중국이라는 black hole로 빨려 들어 갑니다. 화물 운송료는 끝없이 인상되고 동시에 선박의 가격도 올라갑니다. 또 선박을 짓기 위한 기자재 값이 올라가고 자재를 만들기 위한 원자재 값이 올라 갑니다. 결국 선가는 올라 가지만 조선소에 떨어지는 이익은 별로 크지 않다는 결론이 납니다. 특히 자재구매에 대한 협상력이 떨어지고 금융동원 능력도 적고 생산성도 낮은 소형 신설 조선소들은 결국 이 호황 속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선박영업으로 시작했으니 우리 조선공업의 영업에 관한 제 이야기로 끝맺고저 합니다. 한국은 40% 이상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습니다. 압도적입니다. 일본은 30% 미만으로 떨어 지고 있고 중국은 2015년까지 한국을 따라 잡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한국의 세계시장 주도는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 될 것입니다. 일본은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나 새로운 시장에 대한 도전을 포기했습니다. 중국은 구조적으로 조선공업과 같은 섬세한 기술과 정확한 납기를 요하는 산업에 짧은 기간내에 적응한 다는 것이 어려워 보입니다. Chemical tanker 에 적용된 그들의 용접기술은 아직 초보적이고, 중국 최대최고 조선소가 LNG carrier에 도전하였으나 한국의 두배 이상 납기가 주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6개월 이상 납기가 늦어 지고 있습니다.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하거나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건조는 한 동안 한국의 차지가 되리라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이렇게 바깥의 상황은 잘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앞에 아주 먹음직한 밥상이 차려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극복 해야 할 일들은 바깥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사회 내부의 “하잘 것 없는 장사치” 라는 사농공상식 조선조 시대의 사고방식입니다. 이 사회의 시스템은 향상되는데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고쳐나가야 할 몫입니다. 생각의 수준을 높이십시요. 자기의 일에 대해 자신과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무엇이 고마운 것인지를 알면 무엇을 해야 할 지가 보일 것입니다.

제 말이 좀 장황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후배 여러분.
훌륭한 경영자가 되어 이 나라 조선공업의 백년대계에 큰 받침돌이 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