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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사람들
  Author : 황성혁     Date : 07-01-08 12:58     Hit : 15364    
 
 
2006년 12월 30일자 대한조선학회지 제43권 제4호에 실림 칼럼입니다.


                                                    일 본  사 람 들
                                               
몇년 전 일이다. 홍콩선주의 선박신조계약 조인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서명후 선주와 조선소, 금융회사 등 많은 점잖은 사람들이 저녁상을 받고 조용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계약서 서명의 흥분을 달래고 있었다. 그 편안한 분위기를 깬 것은 한 일본 친구였다. 계약한 선박이 등록될 선급협회의 아시아 지점장이었다. 내가 그날 오전 비행기로 홍콩에 들어 왔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그는 약간 쉰 목소리로 부르짓듯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 “미스터 황, 한국가면 나는 절대로 지하철 타지 않을꺼예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와 그에게 쏠렸다. “어제 대구에서 지하철에 불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면서요.” 그는 내 테이블에 있는 선주사 회장을 힐끗힐끗 곁눈질 하며 한국에 대해 고자질할 꺼리를 발견했다는 듯이 지하철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그 전날 대구지하철 운행 중 불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다쳤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그 자리에 맞는 화제도 아니고, 점잖은 자리에서 대거리를 한다는 것이 체신머리 없는 짓 같아서 그 친구 혼자 떠들도록 묵살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냥 지나 칠 수는 없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모두 흩어 질 때쯤 해서 나는 그를 불러 세웠다. “나는 일본가면 정말 지하철을 타지 않지.” “왜요.” “나는 사린 같은 독극물은 아주 싫어 하거든. 잘못해서 불이 날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사람들을 헤칠려고 고의적으로 독극물을 뿌리는 짓은 나는 견딜 수가 없어. 생각만 해도 끔찍해.” 그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끝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요. 그래요. 미스터 황 말이 맞아요.” 몇잔의 반주가 그의 실언을 불렀는지 몰랐다. 나는 그와의 마음의 매듭을 풀어 보고자 그 뒤 몇 년 동안 그와의 눈 맞춤을 시도해 보았지만 그는 아직도 나만 보면 내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하다.

일본사람들은 끊임 없이 그들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대부분 그들의 과거 잘못, 이웃나라에 입힌 피해 등을 사과 한다. 그런데 사실은 사과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과는 하는데 무엇을 사과하는지 분명치가 않다. 진실로 사과를 해야 할 주제인 정신대, 생체 실험 등은 그들의 대화에서는 금기가 되어있다. 특히 제 삼의 외국인이 있는 자리에서는 그들의 이웃 나라에 대한 과거 지배를 은근히 자랑 삼아 거론하고, 한편으론 그것을 공개적으로 사과함으로서 그들의 도량이 넓음을 은근히 내비치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한다. 얼마나 자랑 하고 싶겠는가. 전쟁을 일으키고 이웃나라들을 짓밟고 마음대로 살륙하던 그 신나는 기억을 어떻게 가슴속에만 묻어 두겠는가. 게다가 그들의 자랑을 하고 싶어하는 근성은 태생적이다. 한국전쟁을 통해 그들의 경제가 끝없이 솟아 오를 때, 그들은 그것이 그들의 우월성 때문으로 해석하였다. 세상에 젓가락 사용하는 사람들이 오직 그들뿐인 것으로 착각하고, 젓가락 사용하는 민족의 섬세함과 정확성을 자랑하는가 하면, 오직 죽음과 삶 밖에 없는 그들 무사도의 살신성인 정신등을 자랑하다가, 느닷없이 그들의 뇌의 무게가 세계에서 가장 무겁다는 학설이 나오고, 흑인들의 열등함이나 중국 국민이 지배받지 않을 수 없는 필연성도 옹색하게 강변되곤 했었다.

요즈음 앉은 자리에서는 심심찮게 중동의 자살폭탄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인간의 목숨이며 그 목숨을 유지 하려는 노력이 모든 질서의 근본인데, 근래 그 삶을 내던지는 것으로부터 모든 행위가 이루어 지기 시작하면서, 이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능력은 약화되고 결국 소멸될 것이라고 특히 일본 친구들은 떠들어 댄다. 그들이 떠드는 동안 나는 지루하게 들어주지만 꼭 한마디만은 해 주어서 그들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차대전 중의 당신들 가미가재 폭격은 유사이래 최악의 자살폭탄 이었다.”

퇴임한 고이즈미 총리의 행적이 신문에 오를 때마다 나는 홍콩선주의 계약서명 때 만났던 그 일본인 선급대표 생각을 한다. 평소에 당장 할복이라도 할 사람처럼 근엄하다 못해 처참한 표정을 짓고 지내는 그가 미국에만 가면, 미국의 대통령 옆에만 서면, 우스꽝스럽게 망가진다. 그 표정에 엘비스의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그 어울리지 않는 몸짓으로 춤 같지 않은 춤을 추어 아양을 떤다. 춤과 노래를 담은 그의 얼굴과, 여러 이웃 나라들의 항의를 일축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는 그의 모습을 비교하면 그것은 문자 그대로 넌센스다. 그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며 내게는 걱정이 앞선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미국을 물겠다고 덤벼들 것 같아서이다. 주인 앞에서 있는 재롱을 다 떨며, 주인의 기세를 믿고 손님에게 온갖 위협을 주다가, 수틀리면 주인까지 물어버리는, 그래서 개패듯 매를 맞고 마는 강아지 같아서이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 실험에 대해 일본은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북한 미사일 기지에 대한 선제공격의 정당성”이 거론되는가 하면 “핵폭탄 만들 준비는 다 되어있다. 핵 무장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외무부장관이 입에서 나오고 있다. 무장을 하고 이웃을 침략하고 그러다가 미국까지 처들어 가서 끝내 원자폭탄을 안방에서 맞았던 유일한 나라로서, 역사로부터 배운 것이 그토록 없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하게 된다. 북한의 반응이 재미있다. “일본은 육자회담에 참석할 필요가 없다. 일본은 대등한 국가라기 보다 미국 연방의 일개 주일 뿐이니 회담에 참석할 필요가 없고, 회담의 결과는 미국으로부터 들으면 된다”는 것이다. 국민이 헐벗고 초근목피로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사는 동안, 존재해야 할 이유도 크게 갖지 못한 그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부를 기울여 핵개발에 전력 투구하는 북한이나, 원자폭탄을 두번이나 얻어 맞고도 또 다시 얻어 맞을 짓만 골라 하는 일본이나, 다투는 것도 도토리 키재기 같아 보인다. 언제쯤 제대로 철들이 들려는지.